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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앞둔 직장인을 위한 여행법 (피로탈출, 계획, 치유처)

by 블루스펀지 2025. 12. 27.

나는 6개월 후면 퇴직한다. 회사 다닌 지 32년째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만 일했다. 이제 끝이 보이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후련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작년부터 틈틈이 여행을 다녀봤다. 단순히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해보려고. 퇴직 앞두고 여행 다니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해본다.

피로탈출: 몸과 마음의 고달픔을 푸는 여행

32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쉰 적이 별로 없다. 주말에도 일 생각하고 휴가 때도 이메일 확인하고. 몸도 피곤하지만 정신이 더 피곤했다. 항상 긴장해 있었다. 퇴직 1년 전부터는 의도적으로 여행을 갔다. 아무것도 안 하는 여행.

제주도(Jeju)에 혼자 갔다. 서귀포(Seogwipo)의 한 펜션에 일주일 있었다. 평일이라서 사람도 별로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마시고 바다 보고 그게 전부였다. 처음 이틀은 불안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고 생산적인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근데 사흘째 되니까 그냥 편해지더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구나. 이렇게 쉬는 게 맞구나. 그때 깨달았다. 나는 쉬는 법을 잊고 살았구나.

강릉(Gangneung) 안목해변도 좋았다. 커피거리에서 커피 한 잔 사서 해변에 앉아 있었다. 2시간인지 3시간인지 모르겠다. 그냥 파도 소리 듣고 바람 쐬고.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완도(Wando)도 다녀왔다. 해양 치유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었다. 숲길 걷고 해풍 쐬고 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걷다 보니까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 시기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이어야 한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휴대폰도 꺼버렸다. 회사 단톡방도 나왔다. 어차피 나갈 거 미리 나가면 어떤가. 그렇게 일주일 있다가 돌아오니까 몸이 정말 회복된 느낌이었다.

계획: 인생 2막을 위한 구상 여행

퇴직하면 뭐 하고 살지. 이게 제일 큰 고민이었다. 재취업? 창업? 귀촌? 그냥 쉬기?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여행 가면서 생각해봤다. 머리가 맑을 때 생각하면 좀 나을 것 같아서.

전주(Jeonju) 한옥마을에 갔다. 작은 카페들이 많더라. 한옥을 개조해서 카페를 만든 거였다. 나도 이런 걸 해볼까 생각했다. 커피는 좋아하니까. 근데 막상 가게 주인이랑 이야기해보니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월세도 비싸고 손님도 계절 타고. 그래도 영감은 받았다. 뭔가 작은 가게를 해볼 수도 있겠구나.

통영(Tongyeong)도 갔다. 여기는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조용하고 풍경이 예쁘고. 나는 그림 그리는 건 못하지만 사진 찍는 건 좋아한다. 퇴직하고 사진 공부 좀 해볼까 싶었다. 여수(Yeosu)는 바다가 좋았다. 여기서 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근데 아내가 도시를 떠나기는 싫다고 하더라. 그것도 고려해야지.

여행 다니면서 수첩에 메모를 많이 했다. 퇴직하면 하고 싶은 것들. 배우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 글로 쓰니까 정리가 됐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방향은 좀 잡힌 것 같다. 일단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급할 거 없다.

치유처: 감성과 치유가 있는 장소

퇴직 앞두고 솔직히 좀 불안했다. 회사가 내 정체성이었으니까. 김 과장, 김 부장, 이렇게 불리다가 퇴직하면 그냥 김아무개가 되는 거다. 이게 생각보다 무섭더라. 나는 누구지? 회사 없으면 나는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해(Namhae) 독일마을에 갔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언덕 위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생각을 많이 했다. 회사가 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남편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정체성이 있는 거였다. 회사 하나 없어진다고 내가 없어지는 건 아니구나.

담양(Damyang) 죽녹원은 정말 좋았다. 대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바람에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태백(Taebaek) 구문소도 갔다. 신비로운 자연 경관이었다. 자연 앞에서는 내 고민이 별것 아니구나 싶었다.

템플스테이(Temple Stay)도 해봤다. 2박 3일 동안 절에서 지냈다. 명상하고 스님 법문 듣고 산책하고.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32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구나. 이제는 좀 쉬어도 되겠구나. 스님이 그러시더라. 멈추는 것도 용기라고.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아내랑 같이 여행도 갔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아내랑 제대로 이야기한 게 언제였나 싶었다. 여행 가서 많이 이야기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뭐 하고 싶은지. 아내 이야기를 들으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이제는 아내를 위한 시간도 많이 갖겠다고 약속했다.

마무리하며

퇴직은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한다. 여행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 재충전하는 법, 앞으로 계획 세우는 법, 마음 치유하는 법. 6개월 후면 회사를 떠난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대된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거니까. 퇴직 앞두고 있는 분들한테 말하고 싶다. 미리 여행 다녀보라고. 혼자든 가족이랑이든. 여행하면서 생각 정리하고 마음 준비하면 퇴직이 두렵지 않을 거다. 나처럼.